三法印/無我

무아(無我, anattā)

Dhammarakkhita 2012. 11. 28. 14:47

3. 무아(無我, anattā)

 

비구들이여, 그대의 것이 아닌 것을 놓아 버려라. 그것을 놓는 것이 그대에게 이익과 행복을 오래도록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면 그대의 것이 아닌 것이란 무엇인가?

물질성, 느낌, 지각, 형성력, 의식, 이것들이 그대의 것이 아닌 것이며, 이것들을 그대는 놓아 버려야 한다. 그것들을 놓는 것이 그대에게 이익과 행복을 오래도록 가져다 줄 것이다.

(『상응부』 22상응, 33경)

 

여러 방식으로 자아를 생각하고 있는 저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모두 한결같이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를 자아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 중에 어느 것을 자아로 생각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무지한 범부들은 물질성, 느낌, 지각, 형성력, 의식을 자아라 생각한다. 아니면 자아가 이들 무더기 중의 어느 것을 소유한다고 또는 그 무더기가 자아 속에 포함된다고, 또는 자아가 그 무더기 속에 포함된 것이라 생각한다.

(『상응부』 22상응, 47경)

 

올바른 견해를 지닌 사람이 어떤 법[法, dhamma]을 자아로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부』 115경)

 

많이 배워 고귀한 법을 아는 성스러운 성문은 선지식의 법에 숙달되어 물질성, 느낌, 지각, 형성력, 의식을 자아로 보지 않는다. 또한 자아가 이들 무더기의 소유자라고도, 또 이들 무더기가 자아 속에 내재한다고도, 또는 자아가 이 무더기 속에 내재한다고도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많이 배운 성스러운 성문은 물질성(그리고 나머지 네 가지)의 결박에 속박당하지 않으며, 안팎의 어떤 결박에도 속박되지 않아 피안을 보고 피안에 이르러, 마침내 괴로움에서 해탈한다고 나는 말하노라.

(『상응부』 22상응, 117경)

 

비구가 계행이 청정하여 다섯 가지 무더기가 무상함을, 괴로움임을, 아픔임을, 종기임을, 화살임을, 병임을, 고뇌임을, 남[他]임을, 궤멸임을, 공(空)임을, 무아(無我)임을 올바로 사유하면 예류과(豫流果)를, 일래과(一來果)를, 불환과(不還果)를,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할 수 있다.

(『상응부』 22상응, 122경)

 

누구든 눈이 자신이라고 여겨서는[我慢] 안된다. 자신이 눈 안에 있다고 여겨서도 안되며, 눈 밖에 있다고 여겨서도 안된다. 또 ‘눈은 나에게 속한다’고 여겨서도 안된다. 귀, 코, 혀, 몸 그리고 생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든 자신을 색깔, 소리, 냄새, 맛, 감촉, 법과 동일하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자신이 그것들 안에 내재한다거나, 밖에 존재한다고 여겨서도 안된다. ‘그들이 나에게 속한다’고 여겨서도 안된다.

 

누구든 자신을 눈의 의식[眼識] (……) 귀의 의식[耳識] (……) 코의 의식[鼻識] (……) 혀의 의식[舌識] (……) 몸의 의식[身識] (……) 마음의 의식[意識]과 동일하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자신이 의식의 안에 내재한다거나 바깥에 존재한다고 여겨서도 안되며, ‘의식이 나에게 속한다’고 여겨서도 안된다.

 

누구든 자신이 모든 것(sabbam)과 동일하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자신이 모든 것 안에 존재한다거나 바깥에 존재한다고 여겨서도 안되며, ‘모든 것이 나에게 속한다’고 여겨서도 안된다.

이처럼 더 이상 착각하지 않는 현명한 제자는 세상의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어떤 것에도 더이상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그는 불안에 떨지 않는다. 더이상 불안에 떨지 않는 까닭에 그는 그 몸 그대로인 채 모든 아만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이르게 된다. ‘다시 태어나는 일은 이제는 없다. 성스러운 삶을 살았고,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다시 이런 윤회의 상태를 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깨닫는다.

(『상응부』 35상응, 90경)

 

못 배운 범부는 차라리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이 육신을 자아로 대할지언정 마음을 자아로 대해서는 안된다. 왜 그런가? 육신은 한 해, 두 해, (……) 아니 백 년도 갈 수 있는데 ‘마음’이니 ‘생각’이니 ‘의식’이니 하는 것들은 밤낮없이 다르게 나타나고 사라지고 하기 때문이다.

(『상응부』 12상응, 61경)

 

뜻[意]은 자아가 없다. 뜻의 발생의 원인과 조건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아가 없다. 하물며 자아가 없는 것을 통해 생겨난 뜻이 어떻게 자아일 수 있겠는가?

(『상응부』 35상응, 141경)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다음의 여섯 가지 이로움이 보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알진대, 모든 것[諸法]에서 거기에 일일이 무아로 인식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여섯인가?

첫째, 모든 세계로부터 초연해 질 것이다.

둘째, ‘나’란 견해[我慢]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될 것이다.

셋째, ‘내 것’이라는 견해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될 것이다.

넷째, 특출한 지혜를 골고루 갖추게 될 것이다.

다섯째, (모든 법의) 원인들을 잘 분별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들을 명확히 보게 될 것이다.

(『증지부』 6법수, 104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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