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상경
한 때 부처님께서 바라나시 국의 이씨빠따나 미가다야 숲에서 머무르셨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빤짜왁기 비구들을“비구들이여!”하고 부르셨
습니다.“네, 부처님.”하고 그들이 부처님께 대답했습니다.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물질(色)은 내가 아닙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물질이 나라면, 이 물질이 아프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물질이 이렇게 되어라, 나의 물질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물질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물질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아프게 됩니다. ‘나의 물질이 이렇게 되어라, 나의 물질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물질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3) 상응부(Saṁyutta Nikāya) 22상응(Khandha Saṁyutta) 59경(Sutta)
“느낌(受)은 내가 아닙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느낌이 나라면, 이 느낌이 아프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느낌이 이렇게 되어라, 나의 느낌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느낌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느낌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아프게됩니다. ‘
나의 느낌이 이렇게 되어라, 나의 느낌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느낌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인식(想)은 내가 아닙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인식이 나라면, 이 인식이 아프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인식이 이렇게 되어라, 나의 인식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인식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인식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아프게됩니다.
‘나의 인식이 이렇게 되어라, 나의 인식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인식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비구들이여, 행(行)은 내가 아닙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행이 나라면, 이 행이 아프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행이 이렇게 되어라,나의 행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행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행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아프게 됩니다.
‘나의 행이 이렇게 되어라, 나의 행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행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의식(識)은 내가 아닙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의식이 나라면, 이 의식이 아프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의식이 이렇게 되어라, 나의 의식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의식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의식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아프게됩니다.
‘ 나의 의식이 이렇게 되어라, 나의 의식이 이렇게 되지 말거라.’라고 의식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어찌 생각합니까? 물질이 영원합니까, 영원하지 않습니까?”
“영원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은 물질이 고통스럽습니까, 행복합니까?” “고통스럽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변화하는 특성을 가진 물질은 ‘이 물질은 나의 것이다. 이 물질이 나이다. 이 물질이 나의 자아이다.’라고 보기에 적절하겠습니까?”
“적절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느낌이 영원합니까?, 영원하지 않습니까?”
“영원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은 느낌이 고통스럽습니까, 행복합니까?”
“고통스럽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변화하는 특성을 가진 느낌은‘이 느낌은 나의 것이다. 이 느낌이 나이다. 이 느낌이 나의 자아이다.’라고 보기에 적절하겠습니까?”
“적절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인식은 영원합니까?, 영원하지 않습니까?”
“영원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은 인식이 고통스럽습니까, 행복합니까?”
“고통스럽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변화하는 특성을 가진 인식은 ‘이 인식은 나의 것이다. 이 인식이 나이다. 이 인식이 나의 자아이다.’라고 보기에 적절하겠습니까?”
“적절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행이 영원합니까?, 영원하지 않습니까?”
“영원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은 행이 고통스럽습니까?, 행복합니까?”
“고통스럽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변화하는 특성을 가진 행은‘이 행은 나의 것이다. 이 행이 나이다.이 행이 나의 자아이다.’라고 보기에 적절하겠습니까?”
“적절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의식이 영원합니까?, 영원하지 않습니까?”
“영원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은 의식이 고통스럽습니까, 행복합니까?”
“고통스럽습니다, 부처님.”
“영원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변화하는 특성을 가진 의식은‘이 의식은 나의 것이다. 이 의식이 나이다. 이 의식이 나의 자아이다.’라고 보기에 적절하겠습니까?”
“적절하지 않습니다,부처님.”
“비구들이여, 그렇기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내부와 외부의, 거칠고 섬세한, 저급하고 고귀한, 멀고 가까운, 모든 물질을 ‘이 물질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 물질은 내가 아니다. 이 물질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봐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내부와 외부의, 거칠고 섬세한, 저급하고 고귀한, 멀고 가까운, 모든 느낌을 ‘이 느낌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 느낌은 내가 아니다. 이 느낌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봐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내부와 외부의, 거칠고 섬세한, 저급하고 고귀한, 멀고 가까운, 모든 인식을 ‘이 인식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 인식은 내가 아니다. 이 인식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봐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내부와 외부의, 거칠고 섬세한, 저급하고 고귀한, 멀고 가까운, 모든 행을 ‘이 행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 행은 내가 아니다.이 행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봐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내부와 외부의, 거칠고 섬세한, 저급하고 고귀한, 멀고 가까운, 모든 의식을‘이 의식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 의식은 내가 아니다. 이 의식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봐야 합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견문이 있는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도 염오합니다. 느낌에도 염오합니다. 인식에도 염오합니다. 행에도 염오합니다.의식에도 염오합니다.
염오하기에 갈애가 없습니다. 갈애가 없기에 번뇌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번뇌로부터 자유롭기에 번뇌에서 해방되었다고 아는 지혜가 생깁니다. 다시 태어남이 다했습니다. 고귀한 수행을 마쳤습니다. 해야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이 도의 일을 위하여 다른 할 일은 더 이상 없다고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빤짜왁기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을 만족하며 매우 환희에 차서 받아들였습니다.게송이 섞이지 않은 이 법문을 설하셨을 때, 빤짜왁기 비구들의 마음은 집착하지 않아 번뇌에서 벗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