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正道(여덟가지 성스러운 도)/팔정도의 향상

수행의 단계에서 팔정도의 점진적인 향상

Dhammarakkhita 2012. 12. 6. 16:24

수행의 단계에서 팔정도의 점진적인 향상

1. 신심과 바른 사유(正思惟) - 2 번째 덕목

비구들이여, 여기 여래, 공양 받을 만한 분(應供; 阿羅漢), 완전히 깨달은 분(正邊知), 지혜와 실행을 완전히 갖춘 분(明行足), [열반에] 잘 도달한 분(善逝), 세간을 아는 분(世間解), 위없는 분(無上士), 사람들을 잘 조어하는 분(調御丈夫),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 붓다(佛), 존귀한 분(世尊)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이 천신을 포함한 세계, 마라(惡魔)를 포함한 세계, 범천을 포함한 세계, 사문과 바라문을 포함한 세계, 하늘과 인간을 포함한 세계를 스스로 자신의 직접적인 지혜에 의해서 깨달았다고 선언한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있고, 문장이 잘 이루어진 법을 설하며, 완전하게 청정한 고귀한 삶(梵行)을 보여준다.

 

장자(長者)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계 출신의 사람이 [부처님이 설하신] 이 법을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 여래에 대한 신심(信心)을 가지게 된다. 그는 이렇게 신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세속에서의 삶은 번잡하며 [번뇌의] 먼지투성이다. 하지만 출가는 탁 트인 공간이다. 세속에 살면서 완전하게 갖추어진 완전하게 청정한 고귀한 삶(梵行)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제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法衣)를 걸치고 집에서 나와서 집 없는 출가를 하자' 라고. 얼마 후에 그는 적거나 많거나 자신의 재산을 버리고, 적거나 많거나 친척들을 떠나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에서 나와서 집 없는 출가를 한다.

 

2. 계(戒) - 3, 4, 5 번째 덕목

2.1 바른 행위[正業]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출가 수행자[比丘]가 익혀야 할 생활규정을 잘 지키며, 살생을 버리고 살생에서 멀리 떠나 있다. 몽둥이와 칼을 버리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동정심을 품으며, 모든 생명 있는 존재에 대해서 자비의 마음을 지니고서 지낸다.[不殺生]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에서 멀리 떠나 있으며, 주어질 때까지 기다려서 주어진 것만을 받으며 훔치지 않은 깨끗한 물건으로 지낸다.[不偸盜]

 

금욕적이지 못한 생활(非梵行)을 버리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멀리 떨어져 홀로 지내며, 재가자의 속성인 음욕을 버리고 지낸다.[不邪淫]

2.2 바른 언어[正語]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에서 멀리 떠나,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지키며, 신용 있고, 신뢰감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을 속이지 않는다. [不妄語]

 

이간질하는 말을 버리고, 이간질하는 말에서 멀리 떠나, 이 사람에게서 들은 말을 이간질하기 위해서 저 사람에게 옮기지 않으며, 또는 저 사람에게서 들을 말을 이간질하기 위해서 이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 이처럼 그는 서로 사이가 벌어진 사람들을 다시 사이 좋게 화해시키는 사람이며, 화합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서로 잘 따르고 화합하는 것을 좋아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에 이르게 하는 말을 한다. [不兩舌]

 

거친 욕설을 버리고 거친 욕설에서 멀리 떠나 있다. 부드럽고, 들어서 즐거우며, 마음에 와 닿는 사랑스러운 말, 예의 바른 말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원하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러한 말을 한다. [不醜語]

 

꾸미는 말을 버리고 꾸미는 말에서 멀리 떠나 있다. 그는 말해야 할 때 말하는 자, 사실을 말하는 자, 의미 있는 말을 하는 자, 법을 말하는 자, 율을 말하는 자이다. 말해야 할 때에 기억할 가치가 있는 말, 근거가 있는 말, 적절하고 유익한 말을 한다. [不綺語]

2.3 바른 생계[正命]

 

그는 모든 씨와 식물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루 한번의 식사를 하며, 밤에 먹는 것을 삼가며, 정해진 시간외에는 음식을 취하지 않는다. [非時不食] 노래하고 춤추고, 음악을 듣고, 연극 등을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 꽃다발을 지니고, 향수를 바르며, 연고를 사용하여 꾸미지 않는다. 높고 큰 침상을 사용하지 않는다. 금은을 받아 지니지 않는다. 익히지 않은 곡식을 받지 않는다. 익히지 않은 육류를 받지 않는다. 여인이나 소녀를 받지 않는다. 남자 노예나 여자 노예를 받지 않는다. 염소나 양을 받지 않는다. 닭이나 돼지를 받지 않는다. 코끼리, 소, 말을 받지 않는다. 논밭이나 토지를 받지 않는다. 임무를 수행하는 사절(使節)이 되지 않는다. 사거나 파는 일을 하지 않는다. 무게를 속이거나 화폐를 속이거나 저울을 속이지 않는다. 사기, 속임수, 횡령, 농간 등을 하지 않는다. 상처를 입히고, 때리고, 묶고, 약탈하고, 빼앗고, 폭행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는 가사로 몸을 가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걸식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며, 어디를 가든지 오직 이 두 가지 일 만을 지닌다. 마치 나르는 새가 두 날개만을 지니고 날아다니듯이, 비구는 몸을 가리는 가사와 배를 채워주는 걸식한 음식으로 만족하면서 어디를 가든지 이 두 가지만을 지니고 다닌다.

 

그는 이러한 고귀한 실천(戒)의 덕목들을 잘 갖추고 비난받지 않는 즐거움을 마음으로 느낀다.*

『中部』38『愛盡大經』MN I, 267-8.

 

 

<역주 : 냐나틸로카 스님은 사성제와 팔정도의 개개의 설명을 마친 후, 몇몇 경전에서 수행의 향상과 그 결과에 대한 부분을 정리하면서 본서의 결론으로 삼고 있다.

 

먼저 중부경전의 『愛盡大經』의 내용으로 팔정도의 전체적인 실천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붓다에 대한 신심과 출가에의 결심[正思惟] 그리고 출가한 후의 바른 몸가짐[正業]과 바른 언어생활[正語] 그리고 일상생활 규범으로서의 바른 생계[正命]가 제시되었다.>

 

 

3. 감각기관의 제어(正精進) - 6 번째 덕목

그 비구는 눈[시각기관]으로 대상[色]을 볼 때, 전체적인 윤곽이나 세부적인 모습에 집착해서 그 대상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그가 눈을 제어하지 않은 상태로 (대상을 보고) 있다면, (그 대상에 대해) 탐착하거나 싫어하는 등의 온전하지 못한 마음 상태(不善法)가 생겨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감각기관을) 제어하는 마음이 활동하고 있으며, 눈의 감각기관을 잘 보호하며, 눈의 감각기관을 제어하고 있다.

 

귀[청각기관]로 소리를 들을 때, 코[후각기관]로 냄새를 맡을 때, 혀[미각기관]로 맛을 볼 때, 몸[촉각기관]으로 감촉을 느낄 때, 마음[사고기관]으로 마음의 현상[法]에 대해서 인식할 때, 전체적인 윤곽이나 세부적인 모습에 집착해서 그 대상을 파악하지 않는다. 만일 그가 귀(코, 혀, 몸, 마음의 감각기관)를 제어하지 않은 상태로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감촉을 느끼고, 인식을 하고) 있다면, (그 대상에 대해) 탐착하거나 싫어하는 등의 온전하지 못한 마음 상태(不善法)가 생겨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감각기관을) 제어하는 마음이 활동하고 있으며, 귀 등의 감각기관을 잘 보호하며, 귀 등의 감각기관을 제어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고귀한 감각기관의 제어를 잘 갖추고 비난받지 않는 즐거움을 마음으로 느낀다.

 

4. 올바른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앎(正知) - 7 번째 덕목

그는 앞으로 나아갈 때나 뒤로 들아 갈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앞을 볼 때나, 주위를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팔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탁발을 하기 위해서) 가사(승복)를 수하고(옷을 입고), 발우를 들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가고, 서고, 앉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에도, 말하거나, 침묵을 하고 있을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닌다.

 

5. 올바른 마음집중(正定) - 8 번째 덕목

이러한 고귀한 실천(戒)의 덕목들과 고귀한 감각기관의 제어와 올바른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앎(正知)을 잘 갖추고 그는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아란냐), 나무 아래, 산 속의 협곡, 산 속의 바위굴, 묘지, 나무가 울창한 숲, 노지(露地), 짚단을 쌓아놓은 곳과 같은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조용한 곳을 정하여 그곳에서 지낸다. 걸식(탁발)에서 돌아와 음식을 먹고, 다리를 포개고 허리를 곧게 펴고 면전(面前)에 마음챙김(正念)을 단단히 지니고 앉는다.

 

(1) 탐욕의 극복

 

그는 세간사에 대해서 탐욕을 버리고, 탐욕이 없는 마음으로 지낸다. 그는 탐욕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한다.

 

(2) 성냄의 극복

 

그는 세간사에 대해서 성냄을 버리고, 성냄이 없는 마음으로 지낸다. 그는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에 대하여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지니고 성냄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한다.

 

(3) 혼침과 졸리움의 극복

 

그는 혼침과 졸리움을 버리고, 혼침과 졸리움이 없는 마음으로 지낸다. 그는 광명상(光明想; 빛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혼미해지고 잠에 빠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행법)을 지니고,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을 지니고 혼침과 졸리움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한다.

 

(4) 들뜸과 우울함의 극복

 

그는 들뜸과 우울함을 버리고, 들뜸이 없고 내적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지낸다. 그는 들뜸과 우울함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한다.

 

(5) 회의적인 의심의 극복

 

그는 회의적인 의심을 버리고, 선법(善法)에 대하여 의심하는 마음이 없이 지낸다. 그는 회의적인 의심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한다.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

 

그는 지혜를 무력하게 하는 이 다섯 가지 덮개라는 번뇌를 버린 후, 모든 감각적인 욕망을 떨어버리고, 모든 온전하지 못한 법들(不善法)을 떨쳐 버리고 (마음집중의 대상에 대한)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있고, (감각적인 욕망 등에서) 멀리 떠남에 의해서 생겨난 희열[喜, piiti]과 행복감[樂, sukha]이 있는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을 성취하여 거기에 머문다.

 

두 번째 마음집중[第二禪]

 

다시 그는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가라앉고 마음의 정결함[sampasaadana]과 전일성(專一性)이 있는, 무심(無尋) 무사(無伺)의 마음집중[samaadhi]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감이 있는 제 2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세 번째 마음집중[第三禪]

 

다시 그는 희열을 버리고, 평온[捨,upekkha]에 머문다.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앎[正知]을 지니고, 몸으로 행복을 경험하면서, 성자들이 `평온함과 마음챙김을 지니고 행복감에 머문다'고 한 제3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네 번째 마음집중[第四禪]

 

다시 그는 행복감[樂]을 떠나고 괴로움[苦]도 떠나고,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애버린, 불고불락(不苦不樂)인, 그리고 평온(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또는, 평온과 마음챙김이 청정하게된 ; upekkhaa-sati-paarisuddhi) 제4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中部』38『愛盡大經』MN I, 269-270.

 

6. 바른 이해(正見; 위빠사나) - 1번 째 덕목

 

그 어떠한 물질적인 것(色), 감수작용(受), 표상작용(想), 형성작용(行), 인식작용(識)이 있다하더라도 그 현상[法]들을 그는 영원하지 못한 것[無常], 괴로움[苦], 견고하지 못한 것, 질병, 가시, 고난, 짐, 적, 방해자, 실체가 없는 것[空], 무아(無我)라고 하는 관점에서 본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현상들로부터 마음을 돌린다. 이러한 현상들로부터 마음을 돌린 후, '이것은 고요함이고, 이것은 수승한 것이다. 즉 모든 형성작용[諸行]의 정지, (윤회의 근본인) 모든 집착[upadhi]의 버림, 애욕의 소멸, 탐욕의 없음[無貪; viraga], (모든 괴로움의) 소멸, 열반인' 불사(不死)의 영역에 마음을 둔다. 그는 이러한 상태에서 모든 번뇌의 소멸을 이룬다.

『增支部』IX, 36. 靜慮 AN IV, 424.

 

 

7. 열반(涅槃)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인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존재하고자 하는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어리석음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워진다[解脫]. 마음이 자유로와 졌을 때, '자유로워졌다'라는 앎이 있고[解脫知見] '윤회는 끝났다. 청정한 범행(梵行)은 완성되었으며, 해야할 일은 해 마쳤고, 이 세상에서 해야할 일 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라고 그는 안다.

『中部』38『馬邑大經』MA I, 279.

나는 영원한 마음의 해탈을 이루었다. 이 생은 내가 태어난 마지막 생이며, 또 다른 생은 없다.

『中部』26『聖求經』MA I, 167.

비구들이여, 모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앎, 이것은 실로 최상의 고귀한 지혜이다. ...........

 

비구들이여, 탐욕, 성냄, 어리석음(貪瞋癡)의 적정(寂靜; upasama), 이것은 실로 최상의 고귀한 적정이다.

『中部』140『界分別經』MA III, 246.

 

 

8. 아라한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이것은 나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허망한 생각은 병이며, 질병이고, 가시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허망한 생각을 극복하면 그는 침묵의 성자[muni]라고 한다. 이 침묵의 성자에게는 더 이상 (윤회하여) 태어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으며, 떨리는 것도 없고, 욕망 하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 어떤 것(번뇌와 무명)이 있어서 그것에 의해서 태어나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나이를 먹어 늙겠는가? 늙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죽음이 있겠는가? 죽음이 없는데 어떻게 떨리는 것이 있겠는가? 떨리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욕망 하는 것이 있겠는가?

『中部』140『界分別經』MA III, 246.

 

9. 청정한 범행(梵行)의 진정한 목적

비구들이여, 청정한 범행의 목적은 재물, 명예,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며, 계(戒), 정(定), 지견(知見)을 얻는 것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흔들림이 없는 마음의 자유[不動의 心解脫; akuppaa cetovimutti]가 청정한 범행의 목적이며, 핵심이며, 궁극의 도달점이다.

『中部』29『心材喩大經』MA I, 197.

과거의 어떠한 아라한,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者]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세존들이 자신의 제자인 비구 상가에게 가르친 (수행의) 목적이 있다. 바로 그와 같은 (수행의) 목적을 지금 내가 나의 비구 상가에게 가르친다. 미래의 어떠한 아라한, 정등각자라 하더라도 그러한 세존들이 자신의 제자인 비구 상가에게 가르칠 (수행의) 목적도 이와 같다.

『中部』51『칸다라카經』MA I, 339.

하지만 아난다여, (내가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 후에) 너희들이 다음과 같이 생각할지 모르겠다. '스승의 가르침은 없어졌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스승은 없구나' 라고.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입멸(入滅)한 후에는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치고 제시해준 법(法; 교리)과 율(律; 계율)이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長部』16『大般涅槃經』DN II, 154.

 

그러므로 아난다여, 자신을 등불(또는 섬)로 삼고, 자신을 피난처로 삼아야지 다른 것을 피난처로 삼아서는 안된다. 법을 등불(또는 섬)로 삼고 법을 피난처로 삼아야지 다른 것을 피난처로 삼아서는 안된다.

『長部』16『大般涅槃經』DN II, 100.

 

비구들이여, 내가 깨달아 너희들에게 가르친 이 법을 너희들은 잘 간직하고, 잘 보존하고, 잘 닦으며, 자주 실행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의 복리와 안녕을 위해서, 세상에 위안을 주기 위해서, 천상의 천신들과 인간들의 행복과 복리와 안녕을 위해서 이 청정한 범행(梵行)이 잘 유지되고 오래 지속되도록 하여야 한다. *

『長部』16『大般涅槃經』DN II, 120.

<역주 : 중부경전의 『愛盡大經』을 중심으로 팔정도의 전체적인 실천 과정 가운데에서 바른 마음집중[正定]이라는 덕목까지 정리한 후, 냐나틸로카스님은 바른 이해[正見]는 곧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의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임을 바로 보는 것[위빠사나]이라고 하는 증지부 경전을 제시한다. 그리고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사(不死)인 열반, 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임을 확인한 후, 열반경에서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신 자등명(自燈明)∙법등명(法燈明)의 가르침으로 본서의 마무리를 짓는다.

 

자신을 등불로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라 할 때의 '자신'은 법에 의해서 잘 제어되고 닦여진 '자신의 마음'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번뇌와 고뇌로 가득한 범부의 마음이 법에 의해서 잘 길들여지고 극복된 자기 자신이야말로 자기의 의지처이며 피난처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이다.>

 

 

Electronic Version 2-4-2000

Translated and revised by Jung 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