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과 닙빠나의 길
부처님의 가르침과 닙빠나의 길
법문 : 우 에인다까 사야도
(통역 : 혜송 스님)
이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하는 법과 믿는 법도 여러 가지 입니다. 이렇듯 종교가 가지가지이고 그 종교의 실천방법과 믿는 의식이 모두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입니다. 그 목적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이나 이론으로만 만들어진 가르침이라면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들 자신이 원하고 희망하는 목적을 성취하고 못하고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과 실천이 좌우합니다. 만약, 실제로 실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서 펴는 가르침이라면, 자신이 원하고 희망하는 것은 모두 성취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믿고 의지하고 존경하는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은 생각이나 이론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몸소 실천 수행하여 대각을 깨달은 후 설해진 법입니다.
고따마 부처님께서 완전한 법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4아승지겁(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세월)과 우주 십 만개가 성주괴공 하는 긴 세월 동안 바라밀 열 가지를 완전하게 닦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몸소 행하신 십바라밀을 말하자면, 그 첫 번째가 다나(dāna;보시)바라밀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입고 거주하는 것 등의 의식주에 관계되는 물건을 보시함은 물론이고 어떤 이가 자신의 아들딸 혹은 아내를 원했을 때는 그들을 보시했고 (우빠바라밀)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주는(빠라마타바라밀) 그런 보시바라밀을 닦았습니다. 두 번째가 띨라(sīla;지계)바라밀입니다. 남의 목숨을 죽이지 않는 것 (모든 생명을 포함),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 남의 부부와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술이나 마약 등을 복용하지 않는 것 등의 모든 불선업은 짓지 않고 선행을 부지런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네이깜마(nekkhamma;출가)바라밀입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산속으로 가서 싸마타위빠싸나(samathavipassanā) 수행을 쌓았습니다.
네번째는 삔냐(paññā;지혜)바라밀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그 누가 원하더라도 모두 가르쳐주고, 자신보다 지혜가 높은 이가 있으면 지위가 낮거나 높거나 선하거나 나쁘거나 공손하게 지혜를 배웠습니다. 다섯 번째가 위리야(viriya;정진)바라밀입니다. 허물이 사라지고 좋은 공덕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될 때까지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칸디(인욕)바라밀입니다. 자신이 공덕 행을 닦을 때 어떠한 장애와 고통도 참아내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띳싸(진실)바라밀입니다. 정법에 한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하지 않고 목숨이 달린 일일지라도 바른 법은 바르다고 말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덟번째는 아데이탄(용맹심)바라밀입니다. 자신이 어떠한 공덕을 닦겠다고 결정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용맹스럽게 추진(진행)하였습니다. 아홉 번째는 멧따(mettā;사랑)바라밀입니다. 좋아하는 사람 아주 싫고 미운사람 원수 등의 대상들에게도 똑같이 사랑을 보내는 것입니다. 열 번째는 우빽카(upekkhā;평등심)바라밀입니다. 자신에게 어떠한 불행 과 행복 고난이 닥치더라도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차분하게 평등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삼마삼붇다(스승이 없이 대각을 성취한 분)가 되고 싶은 사람은 최소한 4 아승지겁과 우주 10만개가 성주괴공하는 세월동안 바라밀 열 가지를 바라밀, 우빠바라밀, 빠라마타바라밀(세 가지 방법)로 완전하게 닦아야합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위와 같은 인행을 완성한 후 지금으로부터 2628년 전 떼까지역 카필라국에 숫도다나 대왕과 메도(세상의 어머니) 마야 대비 사이에 태자로 태어났는데 이름이 싯달타였습니다. 태자의 나이 16세가 되었을 때 모든 학문과 무예를 다 익혔고 부왕이 야소다라라는 공주와 결혼시키면서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29세에 왕위의 부귀를 다 버리고 출가하여 산속에서 수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다까와 알라라라는 두 스승에게서 수행하여 모든 선정신통을 얻었습니다. 싯달타가 선정신통을 성취했으나, 노. 병. 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와과 닙빠나에 이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스승을 떠나서 당시 모든 사람들이 존경했던 고행 수행에 들어갔습니다. 말 할 수 없는 6년간의 고행으로 몸에 살과 피가 다 말라서 가죽과 힘줄과 뼈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도와 과도 성취할 수 없었습니다.
싯달타는 고행만으로는 늙음과 병듦죽음으로부터 벗어난 도(magga)와 과(phala) 닙빠나(nibbāna)에 이를 수 없음을 알고, 발우를 들고 탁발을 나갔습니다. 탁발하여 음식을 섭취해서 힘이 생기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점점 힘이 생겼을 때, 8정도를 갖춘 싸띠빠타나 위빠싸나(satipaṭṭhāna vipassanā)를 수행하였습니다.
8정도를 갖춘 사띠빠타나 위빠사나를 수행했을 때, 곧바로 집중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중력이 생겼을 때 집중할 대상(물질)과 집중하는 마음(정신)이 정확하게 만나서 그 대상과 집중하는 마음이 분리되는 지혜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지혜 정신과 물질만이 있고 아가 없음(無我)을 분명하게 아는 나마루빠 빠리세다 냐나(nāma rūpa paric-
cheda ñāṇa)입니다. ‘냐나’란 ‘지혜’ 또는 ‘단계’를 말합니다.
그다음에 몸과 마음을 관찰할 때 마다 걷고 싶은 마음(원인) 때문에 걷고(결과), 그 움직임으로 인해(원인) 걷고 있음을 앎(결과), 몸과 마음은 원인과 결과로 되어 있음을 아는 두 번째 지혜 삣싸야 빠릿가하 냐나(paccaya pariggaha ñāṇa)에 도착하였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아픔쑤심 등의 느낌들을 강하게 알아차림 해가면 나중에는 사라지고 뜨거움차가움가려움 결림 들도 강하게 집중 했을 때 그들이 마지막엔 사라졌습니다. 관찰 할 때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만났을 때 영원한 것이 없다는 무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상함을 지속적으로 느꼈을 때 고통의 성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어남 사라짐 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 스스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아(無我)임을 알았습니다. 무상고무아의 진리를 아는 세 번째 지혜 쌈마사나 냐나(sammasana ñāṇa;진리를 보는 지혜)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몸과 마음을 관찰했을 때 일어난 것은 사라지고 일어난 것은 사라지고 일어나서 사라지지 않는 물질과 정신은 하나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네 번째 우다야바야 냐나(udayabbhaya ñāṇa;生滅을 아는 지혜)입니다.
그 다음 일어남 사라짐에 마음을 밀착해서 강하게 관찰했을 때 일어난 물질과 정신은 사라지고 일어남을 아는 그 순간 모두 사라져가는 것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일어남은 보이지 않고 사라져감만 분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다섯 번째 빙가냐나(bhanga ñāṇa;사라짐의 지혜)라고 합니다.
예전에 영원하다고 생각한 이 몸이 계속해서 사라지고, 사라져 가는 것만 보임으로 이 몸, 물질과 정신을 무서워하는 지혜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여섯 번째 바야냐나 (bhaya ñāṇa;두려움의 지혜)라고 합니다.
물질과 정신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주의를 기울여서 관찰했을 때, ‘이 몸이 정말 좋지 않구나’하고, 몸이 불행함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일곱 번째 아디나와 냐나(ādīṇava ñāṇa;불행의 지혜)라고 부릅니다.
계속해서 몸과 마음을 관찰했을때, “이 몸이 너무나 혐오스럽고 위험한 것이구나”하고 여덟 번째 닙비다 냐나(nibbāna ñāṇa;혐오스러움의 지혜)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혐오스럽고 불안한 물질과 정신을 집중하여 관찰했을 때, 조건지어진 물질과 정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아홉 번째 몽시뚜 까미아따 냐나(muncitu kamyatā-ñāṇa)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몸과 마음을 관찰했을 때, 이 몸이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벗어나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찰해야만 벗어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무상한 성품 〮〮고의 성품 〮〮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무아의 성품을 다시 강하게 느낍니다. 그 때를 열 번째 빠띠싱카 냐나(patisaṅkhā ñāṇa;다시 살펴보는 지혜)라고 부릅니다.
다시 살펴보는 지혜에서 몸과 마음의 생멸하는 무상의 성품〮〮고의 성품〮〮 무아의 성품을 만났을 때, 이전의 단계(제 3, 쌈마싸나 냐나)에서는 마음속에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 단계에서는 행복과 고통의 일어남사라짐(생멸)을 만나더라도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없었습니다. 그 때에 열한 번째 상카 루빽카 냐냐(saṅkhā rupekkhā ñāṇa;평등심의 지혜)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물질과 정신의 일어남 사라짐에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생멸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이 때를 열 두번째 아누로마냐냐(anuloma ñāṇa;적용의 지혜) 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이 몸의 빠른 일어남과 사라짐에 주의를 기울였을 때, 곧 바로 생멸을 보는 탐(갈애)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 때에 바로, 열세 번째 고뜨라부냐나(gotrabhū ñāṇa;성숙의 지혜), 열네 번째 막가냐냐(magga ñāṇa;도) 열다섯 번째 팔라냐냐(phala ñāṇa;과)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 싯달타는 수다원이 되었고 연이어 사다함아나함아라한 도와 과까지 이루고, 마지막 모든 법을 다 아는 땁삔뉴따냐냐(大覺)를 성취하여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대각을 성취한 붓다께서 모든 법을 다 아셨으므로, 현생에 대해서도 알고 지나간 생에 대해서도 알았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알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법을 다 아신 부처님께서 최초로 다섯 수행자에게 법을 설하시기를 ‘수행자들이여! 이 세상에 행복과 고통의 법이 있다. 그 행복과 불행이 그들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행하였으므로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복의 원인은 보시지계수행 이세가지이고, 고통의 원인은 남의 목숨 죽이고 훔치고 거짓말하는 등의 불선업을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옥축생아귀아수라라는 낮은 세계 네 곳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세계가 있고 그보다 수승하고 행복한 천상(6욕천: 사천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천상보다 더 수승한 행복을 누리는 색계무색계(초선정이 3천, 2선정이 3천, 3선정이 3천, 4선정이 7천, 5선정이 4천) 20천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또한, 노병사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닙빠나(열반)가 있다는 것과, 그 곳에 도착하는 방법도 알았습니다. 지금 말한 나쁜 세계로 불리는 지옥축생아귀아수라가 어떤 업을 쌓았기 때문에 그곳에 태어났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세계라고 말하는 사람세계도 어떠한 업으로 인해서 태어났는지 다 알았습니다.
지옥에 태어나면 행복은 하나도 없고 업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잘리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부처님께서 알았습니다. 그리고 축생계는 수행자 여러분이 보듯이 생선이나 소 돼지 염소 닭 등의 생명들이 명대로 살지 못하고 사람에게 잡아먹힘을 당합니다. 그리고 추울 때는 더욱 춥고 더울 때는 더욱 덥고 옷도 없고 집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아귀를 보지 못했으나 부처님께서는 다 보았습니다. 아귀도 또한 축생처럼 삽니다. 옷이 없고 먹고 마실 것도 없고 사람들이 버린 찌꺼기를 먹기 위해 찾아다닙니다. 몹시 춥고 덥게 살다가 고통 속에서 죽습니다. 아수라도 마찬가지로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고 마시고 싶어도 마시지 못하여 가죽과 뼈만 있습니다.
지금 말한 나쁜 세계는 불선업이 다하지 않는 한 죽을 수 없고,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불선업의 힘 때문에 그 곳에 태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저 세상을 보십시오. 교도소에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닙니다. 그 장소에 아무도 오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불선업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쁜 세계에 가고 싶지 않지만 불선업을 짓는 사람은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것과 같고, 감옥에 가고 싶지 않지만, 불선업을 짓는 사람은 감옥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아서 감옥 등의 나쁜 곳에 있는 사람이나, 죽어서 나쁜 네 곳에 가는 사람은 탐 진 치 등의 불선업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천상세계는 보시를 행하는 사람과 오계를 잘 지키는 사람들이 태어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행복한 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공덕의 차이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세계에서 행복하려면, 많은 수고로움이 따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의 행복은 일할 필요가 없고 먹고 마실 것입을 것살 집 등이 완전히 갖추어진데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삽니다. 천상에 태어날 때는 어머니의 배속에 들지 않습니다. 사람세계에서 공덕을 행한 과보로 임종시에 찰라 간에 천상에 태어나는데, 태어날 때 여자는 성장한 16세이고 남자는 20 세로 죽을 때까지 그 모습 그대로 입니다. 또한 천상은 수명이 아주 길지만 늙지 않습니다. 언제나 젊은 모습으로 행복하게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우면 시원하고 추우면 따뜻하게 온도가 자동조절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간천상에서 오욕락을 누리는 것은 똑같은데 다른 것은 사람세계는 부지런히 노력하면 가난한 이도 부자가 될 수 있고 부자였던 사람도 게으르면 가난 해 질수 있는데 비하여, 천상세계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더 부자가 되도록 할 수도 없고 더 가난해 지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세계는 더 높이 발전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나이 많은 이를 위해서 보시할 수 있고 아픈 사람과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천상세계는 불행한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공덕을 짓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천상세계와 사람세계의 차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세계나 천상세계의 행복을 누리고 싶으면, 보시를 열심히 해라, 그리고 계행을 잘 지켜라, 그러면 낮은 세계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색계무색계는 사마타(집중력) 수행을 해서 선정의 힘으로 인하여 태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비희사(4무량심) 등의 집중력 수행을 쌓아야만 합니다. ‘자’ 수행이란, ‘이 우주 31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위험과 해악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마음의 근심이 사라지기를, 몸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안전하고 평화스럽기를,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업을 잘 실어 나를 수 있기를’하고 모든 생명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사랑을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사랑’을 수행하려면 우리가 싸띠빠타나 위빠사나를 수행하듯이 모든 존재들에게 마음을 보내서 그 상태가 한 시간, 두 시간... 계속해서 쌓으면 점점 집중력이 형성되고 오래하면 선정을 성취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선정을 성취한 사람이 죽으면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난다고 하셨습니다. 그 곳에 태어난 사람들은 먹고 마실 필요가 전혀 없고 선정의 기쁨으로 오랜 겁을 산다고 하셨습니다. 색계무색계는 오욕락을 누리거나 오욕락에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선정의 기쁨에만 집착해서 삽니다.
인간과 천상의 행복은 오관을 통해서 누리는 물질적인 것입니다. 그 물건이 충분히 갖추어 졌을 때 행복하고 물건이 없으면 불행하게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행복이라고 합니다. 반면, 색계와 무색계는 오욕락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소멸해서 선정의 기쁨으로 살기 때문에 정신적인 행복이라고 부릅니다.
닙빠나의 세계는 노병사가 완전히 없으므로 행복 중에서 가장 완전한 행복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말 할 필요 없이 수행하는 여러분들이 잘 압니다. 사람세계는 많은 고통과 수고로움을 감수해야하고 수명도 짧습니다. 천상세계는 보다 완전하고 고귀합니다. 수명도 길다면 깁니다. 그러나 그들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색계와 무색계는 먹고 마실 필요가 없으므로 더욱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수하고 행복하더라도 그들도 언젠가는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인간의 행복, 천상의 행복, 색계무색계의 행복보다 더 완전한 행복은, 노병사가 없는 열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열반의 행복을 얻으려면 싸띠빠타나 위빠싸나를 팔정도를 갖추어서 실천 수행하면, 위빠사나 지혜가 한단계 한단계 성숙해서 마지막 도와 과에 이르게 되고, 도와 과에 이른 사람은 저절로 열반에 이르게 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띠빠타나 위빠싸나 수행을 닙빠나로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법문 중에서 수행자 어러분들은 어느 세계를 원하십니까? 사람세계 천상세계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색계 무색계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닙빠나를 원하십니까?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서 거기에 해당하는 공덕을 쌓으면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어느 세계에 가라고 스님이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자신이 선택해서 실천 하십시오.
지금까지 말한 4악도로 가는 길, 사람세계 천상세계로 가는 길, 색계무색계로 가는 길, 닙빠나로 가는 길 등의 네 길 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길을 골라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낮은 4악도 길은 가지 말라고 막고 싶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수행하는 여러분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알았습니다. 그 곳에 이를 수 있는 방법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법문도 또한 완전해 졌습니다. 여러분들 자신이 원하고 희망하는 고귀한 곳을 향해서 자신이 원하는 데로 될 수 있는 법을 열심히 실천수행해서 자신들이 희망하고 동경하는 고귀한 목적지에 모두 도착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스님께서 해주신 축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싸두 싸두 싸두(sādhu sādhu sādhu)
지금 이 법문들은 공덕, 오늘 우리들이 수행한 공덕을 우리들의 부모님과 스승님들 그리고 가족들 이 우주 31세계에 윤회하고 있는 행복한 존재 불행한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사두를 부르십시오. 싸두 싸두 싸두
시방에 있는 모든 생명들
위험과 해악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마음의 근심이 사라져서 행복하기를
몸의 고통이 사라지고 건강하기를
몸과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여 지기를
자신의 업을 잘 실어 나를 수 있기를...
싸두 싸두 싸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