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온/識

분별

Dhammarakkhita 2013. 1. 21. 00:08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은 분별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식은 바로 내적인 근거와 외적인 근거 사이의 분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눈과 모양들, 그리고, 귀와 소리들 등등.

이 상황의 미묘함이 이와 같다. 바로, 이 분별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관계성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의 탄생은 곧 무지의 탄생,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 무지가 주어지면서, 거기에서부터, 세가지 요소들이 지속되어지는 가능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모양들, 그리고, ‘눈을 통하여 일어나는 생각’. 바로, 이 셋이 일으키는 것이 만남’ (phassa : contact : ) 인 것이다.

이 셋이 만남으로써’. 세가지를 셋으로 간주하는 것을 암시하는, 이것이 가장 근저가 되는 인정이다 만남의 개념의 발생.

 

이것은, 논리가에게는 매우 예리한 문제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눈과 모양들 때문에 눈을 통하여 일어나는 생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눈을 통하여 일어나는 생각이 일어난 연 후에는, 거기에 관계성을 잊어버리려는 경향 -- 무시하려는 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번째 요소인 중간치인 바로, 그 분별인, ‘눈을 통하여 일어나는 생각을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식이 조건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명백히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 모양, 그리고, ‘눈을 통하여 일어나는 생각’, 이 셋이 진정한 것으로 간주되어지면서, ‘만남의 무대가 마련되어지는 것이다 이 셋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 만남이다라는 구절이 정당화되어지는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함께 일어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버리는 것 또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 발생적이다.

 

무지를 그 밑-바닥으로 하면서, 이 세가지가 함께 하고 있는 한은, 거기에 만남이 발생하는 것이다. 거기에 만남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그 세번째 요소인, ‘눈을 통하여 일어나는 생각은 바로 나머지 둘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났다는, 그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 냐냐난다 스님, 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