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혜조 스님] 죽음에 관한 두번째 법문
Ⅰ. 동양의 생사관
1. 인도철학 사상
인도철학이라 함은 브라흐만 사상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신(브라흐마)과 지혜 및 심령은 서로 상응하는 존재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실체로 형이상학적 본체의 개념입니다. 영혼이 새로운 물질(육체)과의 접촉이 태어남이고, 영혼이 살던 육신과 이별을 하면, 그것이 곧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이란 단지 물질적 육체의 존망에 불과한 것으로, 영혼 자체는 생과 사가 없이 항상하다고 합니다. 이 영혼의 주재자는 브라흐마(범신)이며, 각 개체의 영혼은 이 브라흐마의 그림자인 범신의 전변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으면 명(明 )과 무명에 의한 개인의 업력에 따라서 다시 전생(轉生)합니다. 그때 생기의 원소(만물의 원소는 화,수,토,공,에테르)가 범천으로 돌아가면 육체를 떠난 영혼은 다만 빛으로써 범신의 빛과 접촉을 하여 범아일여(梵我一如)가 됩니다. 이렇게 해탈한 영혼은 단지 범천의 향락을 즐길 뿐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지행이 일치되어야 하며, 자아절제의 수행은 필수이며, 선과 악 그리고 자신의 공덕과 선행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세속적 소유를 버려야 합니다. 또한 반드시 최선을 다하여 선행을 해야만 신분 높은 인간 세상에 태어날 수 있고, 희생의 봉사가 없다면 지옥의 염라대왕이 있는 곳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브라흐만 사상의 생사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지는 윤회사상과 인과사상입니다. 단 불교와 다른 것은 여기서의 윤회는 본체의 윤회라는 것입니다.
2. 중국철학
가. 유가의 생사관
유가는 죽음보다 현실적 삶을 중히 여겨, 형이상학의 문제를 중요시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자손만대의 대를 잇고 종묘사직을 굳건하게 지키는 것을 중히 여겼습니다.
공자는 인간은 외적인 조건이 수반되어야만 비로소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유한한 존재라서 수명과 부귀가 천명(天命)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유가의 이상은 군자인데, 군자는 자아의식을 고취하고, 남을 사랑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로 도덕적 자아의 수양을 쌓아 정신세계를 함양한 도덕적 인격체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지니고, 사회에 유용한 사람으로 도를 펼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두는 자입니다.
삶과 죽음에 있어 인간의 길흉화복, 생사의 여정이 어떠하든지 근본적으로 인의예지의 명(命)을 추구하는 도덕의 가치를 중요시 합니다. 명(命)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氣)의 명(命)인데, 빈부・귀천・죽음・삶・요절・장수이고, 다른 하나는 이(理 ) 혹은 천리(天理)의 명으로서, 깨끗함과 탁함・지혜와 어리석음・현자와 어리석은 자 등 인의예지의 도덕적인 명인데, 이것을 의로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가치를, 의로움을 중하게 여기고 개인적 이익을 가볍게 여김에 두었습니다.
인간의 수명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 모두 하늘에 달렸으므로 죽음에 대해 초연하게 대하였습니다.
나. 도가(道家)의 생사관
범부는 자기 주관적인 입장에서 논리적・이성적으로 지식을 쌓으며, 이기심을 바탕으로 명예와 우월감 그리고 부귀와 권위를 쫓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지식을 작은 앎(小知)이라 하고, 이에 반해 논리적인 지성과 이성을 초월한 오성(悟性)의 심원으로부터 통찰되어 나오는 직관적 지혜를 큰 앎(大智 혹은 眞知)이라 하여 중히 여겼습니다.
이 큰 앎을 지닌 자는 삶과 죽음을 자연의 현상으로 봄으로써, 삶과 죽음을 모두 초탈한 인생을 귀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생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있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죽음을 초월합니다. 인생은 태어나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여정으로 보아, 노자는 인생을 출입(出入)으로, 장자는 거래(去來)로 보았습니다.
삶도 죽음도 모두 자연현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너무 인위적으로 삶에 치우치는 것을 일종에 생의 집착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일체를 순리대로 순응하면서 현실에 만족할 줄 알라고 충고합니다. 인간이 욕망을 따르면 끝이 없으므로 노자는“만족할 줄 아는 자가 부자다”라고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