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마음집중[正定]
4.8.1 바른 마음집중의 정의
바른 마음집중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cittekaggataa ; 心一境性], 이것이 마음집중[三昧]이다.
[* 가장 넓은 의미에서 생각할 때, '바른 마음집중'[正定; sammaa-samaadhi]이란, 모든 온전한 의식 상태[善心; kusala-citta]에 내재하고 있는 정신적인 집중상태를 말하며, 최소한 바른 사유[正思, 두 번째 덕목], 바른 노력[正精進, 여섯 번째 덕목], 바른 마음챙김[正念, 일곱 번째 덕목] 의 세 가지 덕목을 동반하고 있다. '바르지 못한 마음집중'[邪定; micca-samaadhi]이란 온전하지 못한 의식 상태에 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오직 감각적 욕망의 영역[欲界]에서만 있을 뿐 더 높은 영역[色界 또는 無色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전에서 마음집중[三昧; samaadhi]이라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경우에는 항상 바른 마음집중을 의미한다.]
4.8.2 바른 마음집중의 대상·조건·향상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 이것이 마음집중의 근거[nimittaa]이다. 네 가지 바른 노력, 이것이 마음집중의 조건이다. 이러한 법들을 실행하고, 닦으며, 계발하는 것, 이것이 마음집중의 향상[bhaavanaa]이다.
{中部} 44 {有明小經} MN I, 301.
[* 바른 마음집중은 근접삼매(近接三昧)와 안지삼매(安止三昧)의 두 단계로 나뉘어진다. 근접삼매는 초선(初禪)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초선에 접근해 가는 마음집중을 말하며, 안지삼매는 초선에서 사선(四禪)에 이르는 네 가지 선정(禪定)으로 대표되는 마음집중을 말한다. 이러한 선정은 다섯 감각기관의 영역[欲界]을 넘어서 있는 마음의 상태이며, 감각적인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마음집중 수행에 꾸준하게 전념할 때에만 경험될 수 있다. 이러한 선정의 상태에서는 다섯 감각기관의 모든 활동은 정지된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어서 생기는 어떠한 느낌들도 선정의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으며, 어떠한 육체적인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외적인 모든 감각적인 느낌들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활동적이고, 아주 기민한 상태이며, 충분히 깨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정에 도달하는 것이 (수타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는)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四果]를 얻는데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근접삼매나 안지삼매에는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선정에는 번뇌나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해주는 힘이 정말로 없다. 현상적인 존재의 모든 흐름이 영원하지 못하고[無常], 안정되어 있지 못하며[苦], 영원한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음[無我]을 통찰하는, 깊은 지혜(위빠사나)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은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의 지혜는 안지삼매를 통해서가 아니라 근접삼매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네 가지의) 선정을 경험하지 않고서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 가운데 하나라도 얻은 사람을 일컬어 자신의 수행법으로 위빠사나만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건관행자(乾觀行者; sukkha-vipassaka) 또는 순관행자(純觀行者; suddha-vipassanaayaanika)라고 한다. 이에 반해서 선전 수행을 닦은 후에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의 하나를 얻은 사람을 일컬어 자신의 수행법으로 선정을 의미하는 고요함[止; samatha]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지행자(止行者; samathayaanika)라고 한다.] *
<역주 : 『붓다의 말씀』의 편저자인 냐나틸로카 스님은 『대념처경(大念處經)』에 설해진 가르침을 중심으로 팔정도의 일곱 번째 덕목인 바른 마음챙김[正念]에 대한 긴 설명을 마친 후, 팔정도의 마지막 덕목인 바른 마음집중[正定]에 대해서 해설을 시작한다. 먼저 중부경전의 {有明小經}에 간단하게 설해져 있는 마음집중[禪定]의 정의, 대상, 조건, 향상에 대한 부분을 제시한 후, 구체적으로 초선(初禪)에서 사선(四禪)의 의미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다. 이번에는 {有明小經}의 간단한 내용과 그에 대한 냐나틸로카 스님의 해설을 번역해 보았다.
경전에 제시된 마음집중[禪定]에 대한 정의는 가장 일반적인 정의로서 알려져 있는 정의이다. 즉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어 있는 상태'가 그 정의이다. 다음으로 마음집중의 대상으로서 사념처(四念處)가 제시되어 있는 점에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본래 사념처 수행은 지혜의 계발과 직결되어 있어 위빠사나 수행의 내용이 되어 있음은 이제까지 살펴본 바른 마음챙김[正念]에 대한 해설을 참조하면 알 수 있다.
선정과 지혜 또는 지(止)와 관(觀),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aa)로 대표되는 불교의 두 수행법의 대상이 동일하게 사념처(四念處)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선정 수행과 지혜 수행의 공통의 기반을 확인할 수 있다. 몸∙느낌∙마음의 상태∙심신의 여러 가지 현상[身受心法]인 네 가지 마음챙김의 대상 자체가 선정 수행을 위한 대상인 동시에 지혜 수행을 위한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수행법이 서로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법구경(法句經)』의 다음 시구에서도 확인된다.
지혜가 없는 자에게는 선정이 없고, 선정이 없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다.
선정과 지혜를 갖춘 자, 그에게 열반은 가까이 있다. Dhp 372.
선정과 지혜가 사념처를 공통의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 두 수행법은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선정 수행을 위주로 하는 수행법과 지혜 수행을 위주로 하고 있는 수행법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냐나틸로카 스님의 해설에서 볼 수 있듯이, 지혜 수행을 의미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에게는 사선(四禪)으로 대표되는 안지삼매가 아닌 초선(初禪)에 가까이 접근하는 근접삼매가 지혜의 직접적인 조건으로서의 선정의 역할을 한다. 즉, 사선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근접삼매라는 선정이 지혜의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근접삼매란 초선에서 사선에 이르는 완전한 선정의 상태에 이르기 직전의 선정의 상태이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선정론이지만 위빠사나 수행의 바탕이 되는 선정은 근접삼매라고 이해한다면 크게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위빠사나 수행에도 선정이 필요하며, 그 선정은 근접삼매라고 이해해두자. 실제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에게도 사선을 수행할 때 경험되는 선지(禪支; 선정의 구성요소)가 경험되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에 근접삼매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하면 불교의 수행법의 두 날개인 선정과 지혜,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며, 사념처를 공동의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에 의거한 수행법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다.>
4.8.3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
(1) 초선(初禪)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든 감각적인 욕망을 떨어버리고, 모든 온전하지 못한 법들[不善法]을 떨쳐 버리고 (마음집중의 대상에 대한)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있고, (감각적인 욕망 등에서) 멀리 떠남에 의해서 생겨난 희열[喜, piiti]과 행복감[樂, sukha]이 있는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을 성취하여 거기에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 이것이 미세한 물질의 세계[色界]에 속하는 마음집중[禪定]의 첫 번째 단계이다. 이 초선은 마음집중의 힘과 다섯 감각기관의 활동의 일시적인 정지와 다섯 가지 덮개[五蓋]의 일시적인 소멸을 통해서 얻어진다.]
벗들이여,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에는 다섯 가지 현상[五蓋]이 끊어지고, 다섯 가지 현상[五禪支]이 갖추어진다.
[오개(五蓋)의 사단(捨斷)]
벗들이여, 여기에 첫 번째 마음집중에 도달한 비구에게는 (1) 감각적 욕망에의 희구[kaamacchanda]가 끊어진다. (2) 악의[惡意, byaapaada]가 끊어진다. (3) 혼침과 졸음[thiina-middha]이 끊어진다. (4) 들뜨는 마음과 회한에 잠기는 마음[uddhacca-kukkucca]이 끊어진다. (5) 회의적인 의심[vicikicchaa]이 끊어진다.
[오선지(五禪支)의 구족(具足)]
첫 번째 마음집중에 도달한 비구에게는 (1) 거친 사유[尋, vitakka], (2) 미세한 사유[伺, vicaara], (3) 희열[喜, piiti], (4) 행복감[樂, sukha], (5) 하나의 대상에 대한 마음의 통일[心一境性, cittekaggataa]가 작용한다.
{中部} 43 {有明大經} MN I, 294.
[*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에서 작용하는 다섯 가지 현상을 초선의 다섯 구성요소라고 한다. 그 가운데 거친 사유[尋, vitakka]와 미세한 사유[伺, vicaaro]는 마음의 언어적인 작용[vaci-sa"nkhaara]으로 불린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의식의 이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淸淨道論』에 의하면, 거친 사유[尋, vitakka]는 물병을 잡는 행위에 비유되고, 미세한 사유[伺, vicaaro]는 잡은 물병을 닦는 행위에 비유된다. 초선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하고 있지만, 수행의 대상에 마음이 완전히 몰입되어 있을 때, 미세한 사유는 산만함이 없어지고 탐색하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이 두 가지 초선의 요소는 제 2선(第二禪) 이후에는 완전히 없어진다. ]
(2) 제 2선(第二禪)
다시 비구들이여,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가라앉고 마음의 정결함[sampasaadana]과 전일성이 있는, 거친 사유가 없고[無尋] 미세한 사유도 없는[無伺]의 마음집중[samaadhi]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감이 있는 제 2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제2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희열[喜], 행복감[樂] 그리고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分別論』「禪定分別」Vibh 263.
(3) 제 3선(第三禪)
다시 비구들이여, 희열을 버리고, 평온[捨,upekkha]에 머문다.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앎[正知]을 지니고, 몸으로 행복을 경험하면서, 성자들이 `평온함과 마음챙김을 지니고 행복감에 머문다'고 한 제3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제3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행복감[樂]과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分別論』「禪定分別」Vibh 264.
(4) 제 4선(第四禪)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행복감[樂]을 떠나고 괴로움[苦]도 떠나고,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애버린, 불고불락(不苦不樂)인, 그리고 평온(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또는, 평온과 마음챙김이 청정하게된; upekkhaa-sati-paarisuddhi) 제4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제4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평온[捨]과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分別論』「禪定分別」Vibh 264.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마음집중[正定]이라고 한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 『청정도론』에는 40 가지 선정 수행의 주제[業處]가 제시되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수행의 주제를 제대로 닦으면 다음의 선정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4선(四禪) ;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열 가지 카시나[十遍] 수행,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 가운데 평온의 마음가짐[捨梵住].
초선, 제2선, 제3선 ;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 가운데 慈∙悲∙喜梵住.
초선 ; 10 가지 부정관(不淨觀), 몸의 32 가지 부분에 대한 마음챙김[身至念]
근접삼매(近接三昧) ; 여섯 가지 마음챙김[六隨念;불법승(佛法僧), 계(戒), 사(捨), 천(天)]
열반에 대한 마음챙김[寂止隨念],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死念], 음식을 싫어하는 생각[食厭想],
(地水火風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분석[四界區別].
4무색정(四無色定) ; 4선을 바탕으로 하여, 각각의 명칭에 따른 선정의 주제를 닦아서 다음의 4무색정을 얻는다.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선정 수행의 40 가지 주제에 대해서『청정도론』의 3장에서 13장에 자세히 다루어져 있다.]*
<역주 : 위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팔정도의 마지막 덕목인 바른 마음집중[正定]에 대한 설명은 4선(四禪)에 대한 해설이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냐나틸로카 스님은 『청정도론』등을 참조하면서 선정수행에 대해서 조금은 전문적인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40 가지 선정 수행의 주제와 각 수행의 주제에 의해서 얻어지는 선정의 단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사선(四禪)으로 대표되는 마음집중은 지혜의 계발을 위한 조건으로서 제시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선정과 지혜, 사마타와 위빠사나라는 두 가지 수행법은 어느 한 쪽이 없으면 다른 한 쪽도 있을 수 없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해두자. 선정 수행에 동반되는 분명한 앎[正知]은 처음에는 힘이 약하더라도 지혜의 역할을 하며, 선정에 의해 잘 안정된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사물(자신과 세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성숙한 지혜가 생겨나는 것이다.
불교의 목표는, 인간의 무지와 애욕[苦集聖諦]에 기인하고 있는, 인간의 삶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삶의 불안[苦聖諦]을 뿌리째 없애어, 흔들리지 않는 행복인 열반[苦滅聖諦]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두 수행법[苦滅道聖諦]이 바로 선정과 지혜라는 불교의 입장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붓다의 말씀」에서 정리된 팔정도의 전체적인 틀을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집중[三昧]을 닦아야한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잘 집중되어 있는 비구는 있는 그대로 안다.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아는가? 물질적 현상[色]의 발생과 소멸, 감수작용[受]의 발생과 소멸, 표상작용[想]의 발생과 소멸, 형성작용[行]의 발생과 소멸, 의식작용[識]의 발생과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안다.
『相應部』XXII 5「三昧」SN II, 13.
물질적 현상의 무더기[色蘊], 감수작용의 무더기[受蘊], 표상작용의 무더기[想蘊], 형성작용의 무더기[行蘊], 의식작용의 무더기[識蘊]를 현명하게[abhi~n~naa] 잘 이해해야 한다. 어리석음[無明]과 존재에 대한 애욕[有愛]을 현명하게 없애버려야 한다. 마음의 고요[止; 禪定]와 위빠사나[觀; 智慧]를 현명하게 닦아야 한다. 깨달음[明]과 자유로움[解脫]을 현명하게 실현해야 한다.
{中部} 149 {六處大經} MN III, 289-290.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깨닫고, 중생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알도록 한 중도(中道)이다. 이 중도에 의해서 적정(寂靜)과 지혜와 깨달음과 열반에 이른다.
『相應部』LVI, 11. 「如來說」SN IV, 421.
이 길을 따르면, 괴로움의 소멸을 이룰 것이다.
『法句經』Dhp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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