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란 무엇인가? - 1
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살아가는 불자(佛子)들에게 수행이란 무엇인가? 조금은 학술적인 의미에서 시작해서 일상적인 의미로 옮겨가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수행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와 팔리어로 bhavana라는 말이 있다. 한문으로는 수습(修習)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이 말은 닦고 익힌다는 말이니, 논어의 처음에 나오는 배우고 때로 그것을 익힌다(學而時習之)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원어의 의미를 보면, -존재하다.- 또는 - ~이다-라고 하는 동사 원형 bhuu의 사역형(使役形)이 bhaveti가 명사화된 용어이다. 사역의 의미를 넣어서 번역해보면, -되게 하는 것-, -존재시키는 것- 등의 의미가 될 것이다. 영어로는 만들어 내는 것 producing, 마음을 무엇에 적용시키는 것 application, 생각이나 명상을 통해서 발전하는 것 developing(PTS Pali-English Dictionary)이라고 해석되어 있다.
수행(修行)이라는 말은 닦고 실천한다는 의미이니, 원래의 의미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되게 하는 것이란 의미로 해석해보자. -되게 한다는 것-은 지금의 상태 보다 더 나아진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의 상태보다 더 좋아진 상태, 더 향상된 상태로 변화해나가는 것이 바로 수행의 의미라고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서 수행과 가장 어울리는 덕목은 노력을 의미하는 정진(精進)이 될 것이다.
정진은 네 가지로 제시되어 있어, 사정근(四正勤), 사정단(四正斷) cattaro sammappadhana이라고도 하며, 네 가지 노력을 의미한다.
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하고 온전치 못한 법은 생겨나지 않도록 의욕을 일으키고, 애쓰고, 정진하고,마음을 책려(策勵)하고 노력함. [未生惡令不生]
② 이미 생겨난 악하고 온전치 못한 법은 없애려고 의욕을 일으키고, 애쓰고, 정진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함. [己生惡令永斷]
③ 아직 생겨나지 않은 온전한 법은 생겨나도록 의욕을 일으키고, 애쓰고, 정진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함.[未生善令生]
④ 이미 생겨난 온전한 법은 유지시키고, 잃지 않도록 하며, 증장시키고, 많아지도록 하며, 계발하고, 완성시키도록 의욕을 일으키고, 애쓰고, 정진하고,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함. [己生善令增長]
이처럼 수행이라는 말을 정진과 연관시켜서 이해하면, 일단은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수행방법이 있는가? 초기불교의 전승에 따르면, 자율적인 규범인 계(戒)와 마음이 한 곳에 집중한 상태를 의미하는 정(定)과 있는 그대로 알고 본다는 의미의 혜(慧)라는 세 가지 실천법[三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불교의 수행법은 이 세 가지 덕목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팔정도(八正道)도 이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이 삼학에 의해서 불자들은 몸과 입과 마음[身口意]로 짓게 되는 행위를 깨끗하게 하여 마음을 닦아 더 나은 존재, 평온하고 행복한 존재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몸과 입으로 짓는 거친 번뇌는 계로서 다스리고, 마음에서 생겨나는 번뇌들은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로서 다스린다. 선정은 번뇌를 끊지는 못하고 일단 억눌러서 활동하지 못하게 한다. 즉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하지만, 집중의 힘이 약해지면 다시 마음은 온갖 번뇌 망상의 물살에 휩쓸리게 된다는 말이다. 지혜는 선정의 도움을 받아서 집중된 마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인데, 번뇌가 생겨나는 순간을 바로 포착해서 잘라버리는 작용을 한다. 지혜에 의해서만 온갖 갈등과 번민이 끊어지게 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일상의 신행 생활에 우리는 어떤 수행을 하고 있나 생각해보자. 먼저 가장 일반적인 수행은 예불과 기도, 108배 등의 절, 진언 등을 들 수 있다. 더 나아가 참선을 하거나 경전을 보는 것도 수행이다. 자비심을 지니는 것도 수행이며, 실천하는 것도 수행이다. 법당에서 부처님께 절을 하거나 기도를 하면 마음이 안정된다. 사찰 수련법회에 참석해서 열심히 정진하면 고생은 되어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가. 왜 이런 노력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는가. 간단히 말하면, 온전한 법, 선법(善法)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간절히 부처님을 부르거나 기억하는 염불(念佛)은 마음을 집중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절을 하면서 삶의 향상이나 안녕을 기원하는 것도 마음을 집중하는 좋은 방법이다. 만일 잘못된 방법을 사용한다면, 마음은 안정으로 얻지 못하고 들뜨게 되거나 침체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제자로서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평온하게 만들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는 수행법이 무엇인가 바르게 파악하고, 그 수행법을 실천한 결과에 대해서 되돌아보아, 자신에게 효과가 있는 좋은 수행법을 스스로 찾을 때에만 우리의 삶은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의 주인은 자신이기에 이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삶의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수행이란 무엇인가?- 2
- 위빠사나 수행에 대하여 -
불교 수행의 이익 또는 목적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면,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인 열반의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苦와 苦의 滅만을 설한다고 하신 붓다의 말씀은 인간 존재의 현실적인 모습을 바로 보고, 그 상태를 극복한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을 포함한 불교의 모든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가장 중요시되는 초기경전의 하나인 [대념처경]에 보이는 수행의 이익은 다음의 일곱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1)마음의 청정 - 번뇌의 제거, (2)슬픔과 근심의 극복, (3)비탄의 극복, (4)육체적인 고통의 극복, (5)정신적인 고뇌의 극복, (6)네 가지의 도(道)와 과(果)의 성취, (7)열반의 성취.
여기의 일곱 가지 이익 가운데 마지막 열반의 성취가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익을 얻는 데는 길게는 7년 내지는 짧게는 7일이 걸린다고 경전의 말미에 제시되어 있으며, 번뇌가 남아있으면 불환(不還)의 깨달음을, 번뇌가 없으면 아라한의 완전한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
위빠사나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팔리어로 vipassana, 산스크리트어로 vipaayana라는 말은 영어로는 inward vision, insight, intuition, introspection (PTS: Pali English Dictionary p.627)으로 번역되는 말이며, 가장 일반적으로 insight 또는 insight meditation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의 어원을 보면, 접두사 vi에 '보다'라는 뜻을 지닌 passati라는 말의 명사형인 passana로 되어 있다. vi라는 접두사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vipassana에서의 vi는 뛰어나다(visesa)는 의미와 다양성(vividha)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뛰어난 봄, 뛰어난 관찰, 통찰 등이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관찰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뛰어난 관찰이라고 할 때는, 일반적인 관찰이 아니라 현상의 본성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이며, 영어의 insight라는 번역이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관찰함이라고 할 때의 여러 가지 방식이란,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라는 관점에서 모든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 가지 법의 특성(三法印)인 무상, 고, 무아에 대해서 지혜로써 관찰하는 것이 바로 청정(열반)에 이르는 길임을 설하고 있는 경전으로 법구경(法句經; Dhammapada 277-279)이 있다.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현상(諸行)은 영원하지 않다(無常)고 지혜에 의해 볼 때,
그는 괴로움에 대해 싫어하게 된다. 이것이 청정함에 이르는 길이다.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현상(諸行)은 괴로움(苦)이라고 지혜에 의해 볼 때,
그는 괴로움에 대해 싫어하게 된다. 이것이 청정함에 이르는 길이다.
모든 법들은 영원한 자아가 없다(無我)고 지혜에 의해 볼 때,
그는 괴로움에 대해 싫어하게 된다. 이것이 청정함에 이르는 길이다.
여기에서 지혜에 의해 본다(pannaya passati)는 말이 다름 아닌 위빠사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 위빠사나 수행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현상들을 좋거나 싫다는 감정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끊어짐 없는 관찰을 통해서 우리는 내면의 적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탐,진,치)이라는 근본번뇌를 끊어 낼 수 있게 된다. 이 번뇌들이 일어나는 순간에 그것을 바로 관찰한다면 끊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집중된 마음으로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포착하고, 날카로운 관찰의 힘으로 끊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관찰은 생각이나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현상이 일어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기민한 마음의 작용인 것이다. 이러한 관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진의 힘을 바탕으로 하여 대상에 일대일로 직면하는 마음의 작용인 마음챙김(念, sati)이 있어야 하고, 마음집중(定 , samadhi)이 있어야 한다. 팔정도에서 선정의 그룹에 속하는 세 가지 덕목이 갖추어 질 때 올바른 지혜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수행은 실제로 해볼 때 그 맛을 알 수 있다.이론적으로 아무리 많이 알아도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망이나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기는 어렵다. 이론적인 지식은 살아있는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이라도 깨어있는 수행을 하여 욕망과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순간 욕망과 분노가 끊어져 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마음은 깨끗해져서 평온함과 지혜가 자리할 것이다. 수행은 이렇게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마음의 평온과 날카로운 지혜,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자애로움이 위빠사나 수행과 함께 길러질 때,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 3
-위빠사나 수행을 위한 예비적 수행 -
앞의글(수행이란 무엇인가? - 1, 2)에서 수행일반과 위빠사나 수행의 기본적인 의미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위빠사나 수행에 들어가기에 앞선 예비적인 마음가짐에 대해서 정리해본다. 위빠사나 수행의 주된 자세는 좌선과 행선(걷기 수행)이며, 주로 좌선에 들어 가지에 앞서 네 가지 예비적 수행을 한다. 즉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경직되어 있는 마음을 부드럽고 민첩하게 해주며, 위빠사나 수행에 힘을 불어넣기 위한 네 가지의 예비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예비적인 마음가짐은 수행자의 마음을 보호해주기 때문에 네 가지 보호라고도 한다. 이 예비적인 수행은 위빠사나 수행을 위한 준비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응용할 수 있다.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과 믿음, 자애의 마음, 부정에 대한 상기, 죽음에 대한 상기 이 네 가지이다.
먼저부처님의 덕에 대한 마음챙김(佛隨念 Buddhānussati)을 행한다. 구체적으로는 부처님의 9가지 명호에 담긴 덕을 상기하며, 부처님에 대한 존경, 믿음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은 불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덕을 상기하면서 삼보를 의지처로 한다는 삼귀의를 한다.
“실로세존(bhagavā)은 공양 받을만한 분(阿羅漢, arahaṃ)이며, 완전히 깨달으신 분(正等覺者, sammāsambuddho)이며, 지혜와 실천을 갖추신 분(明行足, vijjācaranasampanno)이며, 행복하신 분(善逝, sugato)이며, 세간을 아시는 분(世間解, lokavidū)이며, 위없는 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이며, 천신과 인간의 스승(天人師, satthā devamanussānaṃ)이며, 깨달으신 분(佛, buddho)이며, 존귀한 분(世尊, bhagavā)이다.”
이처럼자세하게 부처님의 덕을 생각하고 나서 삼배를 하며, 간절하게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붓당사라남 갓차미-(부처님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담망사라남 갓차미-(가르침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상강사라남 갓차미-(스님들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그리고나서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자애관(慈愛觀, mettā)을 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자애관을마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집착하고 있는 자신의 육체의 부정함을 상기하며[不淨想, asubhasantilde;ntilde;ā], 육체에 대한 집착심을 다스린다. 신체의 위장, 내장, 담, 피, 고름 등의 부정물을 생각하여 신체에 대한 집착을 다스린다.
부정에대한 상기를 한 후,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상기하며[死隨觀maraṇasati], 굳은 결의로 게으르지 않고 수행에 임할 마음을 일으킨다.
-이 목숨 언제 끊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단 하나의 현상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리라 -
이와같은 예비적인 수행은 우리가 언제나 실행할 수 있는 수행법이기도 하다. 특히 이 가운데 자애의 마음은 언제나 유익한 실천법으로 위빠사나 수행과 함께 중요시 되는 수행법이다.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열반이라는 최상의 행복을 얻는데 있다. 자애의 마음은 모든 존재들이 바로 이 행복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여기자애의 마음을 닦는 한 예를 소개한다. 실제로 소리를 내면서 두 번씩 읽으면서 마음 속에서 간절하게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그 기원의 효과는 가장 먼저 자신의 마음의 안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자애의마음(慈愛觀, mettā bhāvanā)
모든존재들의 행복을 위한 기원
∙ 지금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 상가와재가자들 모두가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 많은덕을 갖추신 고귀한 스승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한량없는 덕을 갖추신 부모님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도량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지방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상가의 모든 스님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사사(四事)의 모든 시주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국가의 정부가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도둑, 강도, 거짓말쟁이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한량없는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인간, 천상의 천신, 범천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지옥에서 범천에 이르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수행공덕의 회향>
내가행한 모든 선행에 의해서, 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영원한 행복인 열반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바른 길을 따르고 잘못된 길을 따르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만일 다시 태어나게 되더라도 위난과 고통과 재난과 적, 그리고 모든 악을 만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지금 발원한,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한 기원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내가 행한 선행의 공덕이, 우리의 부모와 스승과 친척들과 수호신장과 천신들과 모든 존재들에게 돌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이 공덕에 의해 모든 존재들이 기뻐하기를 기원합니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 4
- 위빠사나 수행의 실제 -
위빠사나 수행에서 일차적인 관찰의 대상
위빠사나 수행은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법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현상 가운데에서 어느 현상을 일차적인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수행의 방법이 달라진다. 미얀마의 마하시 수행법은 배의 움직임이 일차적인 관찰대상이며, 고엔카 수행법에서는 코끝 또는 인중부위의 호흡이 닿는 곳의 느낌을 일차적인 대상으로 관찰하고 난 후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부위별로 관찰한다. 이 글에서는 마하시 수행법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팔리경전 가운데 위빠사나 수행의 소의경전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대념처경』(長部, 22경)에 의하면 신수심법(身受心法)을 관찰의 대상으로 한다. 이 가운데에서 일차적인 관찰 또는 마음챙김의 대상은 자신의 육체와 그 동작, 즉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處]이 위빠사나 수행자들의 수행의 첫 걸음이 된다.
일차적인 대상인 배의 움직임(좌선)과 다리의 움직임(행선)을 거듭 관찰하면서 육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제반 현상들에 마음을 챙기면서 그 육체적인 현상에 수반되어 생겨나는 느낌을 알아가면서 수행은 자연스럽게 네 가지 대상(몸, 느낌, 마음, 법) 전체로 확산되어 가게 된다.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마음챙김의 일차적인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육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보다 거칠어서 알아차리기가 쉽고, 변화도 더디기 때문에 마음집중[禪定] 수행의 기초가 없는 위빠사나 수행자가 마음을 집중하는 데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일차적인 관찰 혹은 마음챙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수행의 시작
몸에 대한 관찰에서 마음챙김의 일차적인 대상과 보고의 내용을 알아본다.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수행자들이 자신의 수행에서 경험한 내용을 1-2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수행지도자에게 보고하여 수행상태를 점검받는다. 실제로 수행하는 이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수행의 대상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와 제대로 자신의 경험으로 보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보고할 때는 일상 언어를 사용하며, 비유를 삼가고 자신의 경험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좌선
앉는 자세는 반가부좌나 결가부좌 어느 쪽도 좋다. 여러 가지 앉는 방법을 시도해 보아 가장 편하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자세를 스스로 찾아 익힌다. 주의해야 할 점은 허리를 바르게 펴 주는 것이다. 좌선을 처음 하거나 오랜만에 하는 이들은 누구나 다리와 등에서 통증을 느낀다. 앉는 자세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다리의 통증은 참아낸다. 아니면 적당히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자세를 바꾸어도 통증은 생기기 때문이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단전호흡 등의 인위적인 호흡은 위빠사나 수행과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호흡은 수행에 방해가 된다.
관찰의 순서와 보고 내용
1. 자연스러운 들숨과 날숨에 동반되는 복부(배)의 움직임에 마음을 둔다.
2. 들숨에 따라 복부가 불러오면, '일어남' 하고 마음속으로 알아차린다.
3. 날숨에 따라 복부가 꺼지면, '사라짐' 하고 마음속으로 알아차린다.
4. 복부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수반되어 생겨나는 복부의 감각들을 주의 깊게 살핀다.
5. 어떠한 감각들이 있었는가 기록해 두었다가 두드러진 현상들을 간단, 명료하게 보고한다.
6. 복부의 일어남 사라짐에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리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이나 몸의 느낌들이 생겨나면, 그 순간 파악한다. 파악한 후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를 보고한다.
행선[걷기 수행]
너무 빨리 걷거나 너무 느리게 걷지 말고 천천히 조금 느린 속도로 걷는다. 적당한 거리(10-20미터)를 왕복한다. 마음챙김의 순서는 처음에 걸으려고 하는 의도에서 시작하여 주요 동작들에 마음을 챙긴다. 걷기 수행은 기본적으로 3단계로 나뉜다.
1. 단계의 알아차림 : 좌선에서 행선으로 바꿀 때, 처음의 5-10분 정도는 굳어 있는 다리를 풀어 주기 위해서 보통의 걸음으로 걸으며, '왼발', '오른발' 또는 '놓음', '놓음' 하며 각 걸음을 알아차린다.
2. 단계의 알아차림 : 걷는 속도를 느리게 하고, 움직이는 다리의 걷는 동작의 각 단계를 '듦', '놓음'하고 알아차린다.
3. 단계의 알아차림 : 보다 느린 동작으로 걸으면서 걷는 동작을 '듦' '나아감', '놓음'이라는 3단계로 나누어 알아차린다.
이처럼 걸으면서 알아차려야 하는 현상은 발바닥에서 무릎 아랫부분의 다리의 감각들이다.
걷는 동작에 수반되어 일어나는 제반 감각들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어느 순간에 어떤 감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가를 알아차려 보고한다.
걷기 수행 도중에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이 생겨나면, 그 순간 파악한다. 파악한 후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를 보고한다.
기본적인 좌선과 행선의 방법을 소개해 보았다. 실제 수행을 하려고 하는 분들은 이 글을 읽고 지도받을 수 있는 곳에서 기본적인 수행법을 지도받기를 권한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5
재가 불자를 위한 수행
-보시, 지계, 천상 그리고 위빠사나-
재가 불자에게 제시된 수행법을 초기경전을 통해서 살펴보면서 현대의 우리들이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되새겨본다.
부처님은 출가제자나 재가제자를 지도하실 때 법을 듣는 사람의 능력과 성향에 맞게 수행법을 가르치셨다. 재가자에게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실천법을 제시하셨는데, 이른바 시계천(施戒天)의 가르침이다. 즉, 보시와 5계 또는 8계의 실천, 그리고 천상에 태어나기 위한 수행을 재가 불자의 수행법으로 제시하신 것이다.
이 세 가지 실천법은 재가자가 일상생활을 꾸려나가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貪瞋癡)이라는 근본 번뇌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보시를 통해서는 탐심(貪心)을 다스리고, 5계 내지 8계를 통해서는 성내는 마음(瞋心)과 탐심을 다스리며, 천상에 태어나기 위한 수행을 하면 탐심과 진심 그리고 어느 정도의 어리석음이 극복된다. 세 가지 실천법을 좀 더 살펴보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타인에게 베푸는 보시에는 세 가지가 있다. 보통 재가자의 경우에는 바른 생계를 통해 획득한 깨끗한 재물(淨財)을 출가제자나 어려운 이와 나누는 행위인 재시(財施)를 자주 실천하라고 부처님은 가르치셨다. 이는 마음속의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의 한 가지이다. 따뜻한 마음과 말, 행동을 통해 남을 편하게 해주는 것도 보시이다. 이러한 보시를 무외시(無畏施)라고 한다. 자비심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나 실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진리를 함께 나누는 보시인 법시(法施)가 있다. 자신이 들은 가르침, 수행법, 수행을 통해 얻는 결실을 남에게 글이나 말을 통해서 나누어주는 행위가 법시이다. 보시는 양이 아니라 질 즉 보시의 동기가 중요하다. 보시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보시에 의해 생긴 공덕을 자신의 행복과 뭇 존재의 행복으로 회향하는 마음을 지닐 때 보시는 완성된다.
5계를 지키는 일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삼가는 정신에 근거하고 있으며,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실천법이다.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 거짓말, 음주는 탐진치에 물든 마음으로 몸과 입을 통해서 저지르는 해로운 행위이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않으면 몸과 입으로 이러한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최소한 이 5계를 지킬 때 우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천상에 태어나기 위한 수행으로 부처님은 네 가지 고귀한 마음가짐인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자주 가르치셨다.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인 자심(慈心), 고통 받는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비심(悲心), 다른 존재들의 선행이나 공덕을 더불어 기뻐하는 희심(喜心), 모든 존재들은 자신의 업에 의해서 삶을 살아간다는 지혜에 바탕을 둔, 치우치지 않는 사심(捨心)을 닦을 때 우리는 범천이라는 천상에 태어날 수 있음을 부처님은 출가재자는 물론 재가제자에게도 강조해서 가르치셨다. 네 가지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인 사무량심의 실천은 각박한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시계천(施戒天)의 세 가지 실천법을 일상생활에서 닦아나가면서 좀더 진지하게 자신의 탐진치를 근원적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재가 불자는 마음집중(定)과 지혜(慧)를 닦아야 한다. 선정과 지혜라는 두 가지 수행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괴로움이 소멸한 열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는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없다. 부처님이 보증한 선정과 지혜 수행의 결실인 최상의 행복(涅槃)을 스스로 거두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이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진정한 불제자의 마음가짐이다.
10여년 전부터 우리에게 소개되어 온 위빠사나 수행은 남방불교권에서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들도 널리 수행하고 있는 수행법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법이며, 초기경전 가운데 『대념처경』(長部, 22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다. (위빠사나 수행법은 정각도량 80호 2003년 6월호 참조)
위빠사나 수행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상황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늘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또는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수행하면 깨달음의 일곱 요인(七覺支)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의 힘과 내적인 평온을 동시에 기를 수 있다. 내적인 평온은 자애심으로 이어지며, 지혜는 자애로운 마음(慈心)과 조화를 이루면서 향상되어 나간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또 한 가지 특징이다.
수행이 안 된 마음은 안정되어 있지 않고 부정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이는 탐진치라는 번뇌가 마음의 주인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위빠사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기 때문에 마음에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다. 설령 일어나더라도 관찰해서 즉시 끊어버린다. 투철한 관찰의 힘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위빠사나 수행자의 마음은 번뇌에서 자유롭고 평화롭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항상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힘으로 마음속에 스며드는 번뇌를 다스려야 한다. 위빠사나는 바로 자신을 관찰하는 방법이며 번뇌를 끊는 지혜이다. 부처님은 초기경전에서 이러한 자기 관찰을 거듭 말씀하셨다.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재가 불자도 번뇌를 다스린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의 목적이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 6
수행자가 갖추어야 하는 다섯 가지 덕목
-신심, 건강, 진지함, 노력, 지혜-
초기의 부처님의 말씀을 보면 정진하는 수행자가 지녀야 하는 다섯 가지 덕목이 제시되어 있다. 이 덕목은 팔리어로 빠다니야앙가(padhaniyangani)라고 하는데 출가/재가의 수행자들이 지녀야 하는 덕목으로 제시되었다. (『증지부』 AN III, 65; 『장부』 DN III, 237)
다섯 가지는 신심(saddha), 건강(appabadha), 진지함(asatho), 노력(viriya), 지혜(panna)를 말한다.
첫째, 믿음이란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 특히 자신이 선택한 수행법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삼보에 대한 믿음의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셨고,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키셨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 분의 가르침은 바로 괴로움의 소멸을 지향하고 있다는 믿음이 법에 대한 믿음이다. 법을 듣고 수행을 해서 자신의 괴로움을 소멸시킨 고귀한 제자들인 승가에 대한 믿음이 승보에 대한 믿음이다. 수행자는 이와 같이 삼보에 대한 믿음과 수행법에 대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믿음은 그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둘째, 건강이란 신체적 정신적인 건강을 말하는데 노력할 수 있는 정도의 심신의 건강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마음의 향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건강과 함께 정신적인 건강도 전제가 되어야 한다.
셋째, 진지함이란 자신의 수행에 대한 솔직함과 곧은 자세이다. 자신이 경험하고 이해한 것을 있는 그대로 지혜를 갖춘 스승이나 수행 동료에게 솔직하고 진지하게 드러내야 수행은 향상될 수 있다. 상상이나 추측, 철학적 분석 등은 직접적인 수행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경험하고 발견한 수행체험을 솔직하게 이야기 할 때 수행지도를 받을 수 있다.
넷째, 노력이란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는데 이롭지 못한 행위[不善法]들은 없애고, 이로운 행위[善法]는 갖추려고 노력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즉 수행자는 네 가지 정진[四正勤]을 갖추어야 한다.
다섯째, 지혜란 고귀하며, 옳고 그름을 분명히 결정하고, 올바르게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게 하는, 현상들의 생멸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를 말한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온(五蘊)이나 십이처(十二處)라는 심신의 모든 현상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무상(無常)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가 있을 때 괴로움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이미 믿음과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이 전제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수행을 시작하는 이가 믿음도 없고 건강하지도 않다면, 이 두 가지 덕목을 미리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은 불교의 수행을 선택하는 이에게는 관문이 되는 만큼 자신의 믿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불교의 수행에 대하여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적어도 부처님이 오직 법을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 가르침을 주셨다는 인간적인 신뢰만이라도 있다면 수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지속적이며 강한 노력을 하지 못한다. 마음의 건강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 완전한 건강 상태라기보다는 추위나 더위, 음식을 소화시킬 수 있는 정도의 육체적인 건강과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여 수행에 집중할 수 있는 정도의 정신적 건강이 갖추어지면 된다.
수행자는 수행 도중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는 데, 이 경험한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스승이나 동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경험하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서 이야기한다거나, 남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이야기한다면, 수행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을 것이다. 길 안내를 받으려면 자신이 서 있는 곳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수행을 하다보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몸은 익숙하지 않은 자세 때문에 여기저기서 통증이 생겨나며, 마음은 쉬지 않고 피어나는 생각들 때문에 수행의 대상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정진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몸의 통증은 수행을 시작해서 3-4일 정도 지나면 조금씩 덜어지게 되므로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도 수행을 열심히 하는 수행자에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라앉게 된다.
이처럼 노력을 해나가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의 무상한 본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관찰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의 경험이 무상하고,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수행을 통해서 파악되는 생멸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게 된다. 경험하는 현상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우리는 현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열반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수행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수행자가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을 지니고 훌륭한 안내자인 선지식과 함께 간다면 반드시 스스로 그 결실을 거두게 된다. 부처님이 제시해주신 법은 잘 설해져 있으며, 스스로 검증할 수 있고,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그 결과를 맛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신심, 건강, 진지함, 노력, 지혜라는 다섯 가지의 덕목을 스스로 갖추어 한 가지 법의 맛인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 7
불교 명상의 근본 개념 사띠(念)
- 사띠의 의미와 적용 -
한문으로 염(念)으로 번역되는 팔리어 사띠(sati)는 『숫타니파타』 등의 고층의 경전에서부터 자주 등장하며, 니까야 내에서는 사띠(sati) 또는 사또(sato), 사띠만트(satimant)이라는 용어로 단독으로 사용되거나 사념처(四念處)와 육수념(六隨念, cha-anussati) 또는 십수념(十隨念, dasa-anussati)이라는 용어로 자주 사용되는 수행관련 용어이다.
먼저 사띠에 대한 어원적인 해석은 니카야에서는 보이지 않고, 주석 문헌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sati에 대한 정의와 주석문헌 특유의 네 가지 측면에서의 해석은『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에 의해 사람들이 기억함으로(saranti taya), 또는 그 자체가 기억함으로(sayam va sarati), 또는 단지 기억하는 것 그 자체이므로(saranamattam eva va), 이것을 사띠(念)이라고 한다 (esa ti sati).
그것은 들뜨지 않는 것을 특성으로 하며 (sa apilapana-lakkhana), 잊지 않는 것을 기능으로 하고 (asammoha-rasa), 보호하는 것을 나타남으로 하거나 (arakkha- paccupatthana), 대상을 향한 상태를 나타남으로 한다 (visayabhimukhabhava -paccupatthana va). 견고한 생각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거나(thirasanna -padatthana), 몸 등(身受心法)에 대한 사띠를 확고하게 하는 것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다 (kayadisatipatthana-padatthana va).”(Vism, PTS ed. 464)
이처럼 사띠는 기억이라는 기본적인 의미와 함께, 사띠의 대상을 잊지 않고 포착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감각기관을 번뇌의 침입에서 보호하며, 대상과 마주하고 있는 마음을 말한다. 따라서 대상을 마음으로 잊지 않고 챙기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에서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하였다. 마치 간화선에서 화두를 잊지 않고 챙기고 있는 상태를 ‘화두를 챙긴다’라고 하듯이 마음이 대상을 잊지 않고 챙기고 있다는 의미에서 마음챙김이라고 한 것이다. 이외에 ‘깨어있음’, ‘주의집중’, ‘마음지킴’, ‘알아차림’ 등으로 쓰이고 있다. 영어로는 ‘mindfulness’, ‘bare attention’, ‘noting’, ‘awareness’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사띠(sati)는 마음집중(定)과 지혜(慧)의 공동의 기반이 되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집중의 기반이 되는 사띠는 경전에서는 주로 수행의 대상에 대한 반복적이며, 지속적인 마음챙김을 의미하는 수념(隨念)으로 나타나며, 대표적으로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이 있다. 그리고 지혜의 기반이 되는 마음챙김은 「대념처경」 등에 제시된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에서 나타난다. 물론 사념처 수행의 내용에는 마음집중을 이루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집중을 위한 방법까지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두 가지 위빠사나 수행의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호흡에 대한 사띠(入出息念)를 기반으로 한 위빠사나와 사띠파타나(念處) 위빠사나이다. 전자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마음집중(定)을 이루는 방법으로 먼저 수행한 다음에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위빠사나를 하는 수행법이며,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레디 사야도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우 바 킨 전통의 고엔카와, 순룬 사야도, 모곡 사야도 등이 가르쳤다. 사띠파타나 위빠사나는 밍군 사야도의 전통을 잇는 마하시 사야도에 의해 대중화된 수행법으로 수행의 도입 단계에서 바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관찰하는 수행법으로 마음집중을 미리 닦지 않는 위빠사나 즉 순수 위빠사나 (純觀, 乾觀)라고 한다.
순수 위빠사나에서는 마음챙김(sati)을 통해서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현상 (복부의 움직임, 가려움, 통증, 저림, 뻣뻣함 등)을 있는 그대로, 단순한 주위 집중(bare attention)을 통해서 분명하게 파악한다. 즉, 현재 분명히 깨어 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심신의 모든 현상을 좋거나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면서, 경험되는 그대로 명확하게 알아차린다.
실제로 미얀마에서 가르치는 위빠사나 수행은 마음챙김(sati) 수행이 어느 정도 향상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챙김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띠빠타나를 의미하는 마음챙김(正念)과 지혜(초보적인 단계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를 의미하는 분명한 앎(正知)은 서로 의지하는 관계이다. 정념이 있을 때, 정지가 있고, 정지가 있을 때, 정념이 있다. 분명한 앎이란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행주좌와) 하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할 때, “나는 걷고 있다” “나는 앉아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염처경」에 나와있다. 이런 앎은 마음챙김이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분명한 앎 자체를 바로 위빠사나라고 하지는 않지만, 위빠사나 수행이라는 수레는 바로 이 정념과 정지의 두 가지 수레바퀴에 의해 굴러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음챙김[正念]은, 파악된 현상에 대한 분명한 앎[正知]과 항상 짝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마음챙김은 단순한 작업이지만 쉽지는 않다. 끊임없는 마음챙김을 지니기 위해서는 강한 열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챙김이 순일해지기까지는 애써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이 예리해지고 정확해지면, 마음집중(三昧)이 이루어지고 마음집중에서 현상들에 대한 올바른 앎(지혜)이 생겨난다. 마음집중과 지혜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마음에서는 번뇌, 갈등, 불안, 우울 등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제거되어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 때가 되면 더욱 수행을 가속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며, 수행 자체가 행복과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게 해준다. 이는 깨달음의 7가지 요인(七覺支)이 경험되는 때이다. 하지만 좋은 현상들이 경험되더라도 이러한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쉬지 말며 최종 목표인 열반에 이를 때까지 마음챙김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수행의 길-8
- 다섯 가지 덮개(五蓋)와 대치법 -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거나 수련회등의 기회에서 집중수행을 할 때, 우리의 마음이 제대로 자신과 사물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다. 이 장애를 다섯 가지 덮개라고 한다. 이 덮개는 특히 어떤 수행이라고 막 시작하려 할 때 심하게 일어나서 수행자들이 수행을 도중에 중단하거나 어렵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번 여름은 산사나 좋은 수행도량을 찾아서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직접 집중수행을 할 계획이 있는 이들은 다섯 가지 덮개가 어떤 것이고 그 덮개를 다스리는 대치법이 무엇인가 일단 이론적으로 잘 알아서 자신의 향상을 위한 정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병가의 말도 있지만, 정말로 자신을 이긴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이 글이 나약해지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바로 잡는 힌트가 되었으면 한다.
다섯 가지 덮개의 번뇌는 ①감각적 욕망에의 희구 ②악의(惡意) ③혼침과 졸음(?沈睡眠), ④들뜸과 회한(掉擧惡作), ⑤회의적인 의심(疑)이다. 이 번뇌는 마음집중(삼매)을 닦는 수행자의 경우에는 첫번째 선정에서 다스려지며, 꿰뚫어 봄(觀)을 닦는 수행자는 순간적인 마음집중(刹那三昧)이 이루어질 때 다스려지지만, 다음의 대치법은 일상생활이나 여러 가지 수행 주제로 다스리는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이 가르침은 팔리 경전의 『중간 길이의 가르침』(中部)의 『念處經』 주석(MN-a I, 281-6)과 『긴 가르침』(長部)의 『大念處經』 주석(DN-a III, 778-782)에 수록되어 있다.
먼저, 감각적인 욕망을 없애는 6가지 방법이 있다.
①부정관을 할 것(不淨相의 획득), ②부정관에 전념할 것(부정관 수행의 노력), ③감각기관을 잘 제어할 것(감각기관의 보호), ④음식에 대해서 소중한 생각을 지니고 양을 조절할 것(식사의 양을 알 것), ⑤도심이 굳은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좋은 사람을 벗함), ⑥감각적 욕망에 대한 말을 피하고 욕망을 제어하는 말을 할 것(적절한 말).
두 번 째, 분노(惡意)를 없애는 6가지 방법이 있다.
①자관(慈觀)을 닦을 것(慈相의 획득), ②자관(慈觀)에 전념 할 것(자관 수행의 노력), ③업은 자신의 것임을 생각할 것(자신이 지은 업의 자성을 관찰), ④자관의 좋은 점과 분노의 해로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것(관찰을 많이 닦을 것), ⑤분노를 잘 다스리는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좋은 사람을 벗함), ⑥자관의 이로움과 분노의 불이익에 대한 말을 할 것(적절한 말).
세 번 째, 혼침과 졸음을 없애는 6가지 방법이 있다.
①혼침과 졸음의 원인이 과식에 있음을 알 것(과식에 대한 相의 획득), ②자세를 바꿀 것(위의의 전환), ③광명상(光明想)을 닦을 것(광명상의 사유), ④지붕이 없는 곳에서 수행할 것(노지에서 머물 것), ⑤잠자기를 즐기지 않는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좋은 사람을 벗함), ⑥수면의 불이익과 깨어 있음의 이로움에 관한 말을 할 것(적절한 말).
이 외에도 수행 도중 졸음에 시달리던 목갈라나 존자에게 부처님이 일러주신 졸음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AN IV, 85-91, 增支部, 七集, 第六 無記品, 58經).
①졸음의 원인이 되는 생각들을 떨쳐 버릴 것, ②이전에 들은 가르침(法)을 상기할 것, ③가르침을 자세하게 반복해서 생각하며 외울 것, ④양 귓불을 잡아당기고 팔 다리를 문지를 것, ⑤자리에서 일어나 찬물로 눈을 씻을 것, ⑥광명상(光明想)에 주의를 기울일 것, ⑦경행(걷는 수행)을 할 것, ⑧사자와 같이 누워서 쉬되 일어날 시간을 정하고 잠에 들 것.
네 번 째, 들뜸과 우울(회한)을 없애는 6가지 방법이 있다.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배울 것(多聞할 것), ②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두루 물을 것(널리 물을 것), ③계율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율에 대한 분명한 앎), ④계를 잘 이해하고 지키는 연장자(장로)와 함께 지낼 것(老長老를 가까이 모실 것), ⑤들뜸과 우울을 잘 다스리는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좋은 사람을 벗함), ⑥들뜸과 우울의 해로움과 마음의 고요함의 이로움에 관한 적절한 말을 할 것(적절한 말)
다섯 번 째 회의적 의심을 없애는 6가지 방법이 있다.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배울 것(多聞할 것), ②불법승 삼보에 대한 의심이 있으면 질문을 하여 의심을 풀 것(널리 물을 것), ③계율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율에 대한 분명한 앎), ④삼보의 진실함에 대한 믿음을 기를 것(신심[勝解]을 많이 닦을 것), ⑤삼보에 대한 신심이 지극한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좋은 사람을 벗함), ⑥의심의 해로움과 의심을 없애는 일의 이로움에 대한 적적한 말을 할 것(적절한 말).
이처럼 각 덮개와 그에 대한 대치법을 잘 숙지하고 나서 좋은 스승의 지도하에 법에 대한 신심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마음은 다섯 가지 덮개에서 벗어나 분명한 앎과 깊은 마음의 안정을 이루면서 일상생활이나 집중수행에서 바른 길(八正道)를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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